
이 중에 속도감이 느린 눈을 갖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건 아마 나일 것이다. 여름의 바람도 풍경도 이
야깃소리도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마음 속으로 선명히 흘러들어온다. 모두 곧 잊어버리겠지만
난 아마도 이후에도 그 언젠가의 이후에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겠지. 마치 음악을 들으면 그날의 공
기와 하늘빛이 살아나듯이, 자전거 바퀴에 부딪히는 차가운 물의 부서짐과, 비탈을 오르며 차올렸던
작고 모난 돌들의 달그락거림이 이 여름의 풍경과 함께 언제까지나 마음 속에서.
이것은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에 그 깜빡거림 사이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감정의 조각. 하지만 순간을
스치는 자잘한 마음이라도, 때로는 그것이 떠올랐다는 기억 자체가 뭉툭한 가시가 되어 몸 속에 남는
다. 그렇게 마음 속에 쌓였다가 어느 순간 불쑥 떠올라오는 추억. 어느 때는 희미한 미소가 되어, 어느
때는 손가락이 저리도록 마음 아픈 현기증이 되어.
속도감이 느린 눈. 달아오른 자전거 체인 위에 갓 퍼낸 물을 훌훌 뿌리며 생각한다.
모든 것이 천천히, 천천히 마음 속에서 녹아가 사라진다해도 끝내는 눈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풍경.
그것을 불러오는 음악이라는 이름의 소리.
여름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시간의 입자.
그 속의 우리들.
그저, 그립다.
# by 이펠 | 2009/01/09 13:36 | ├ RAG FAIR




